2025년, 정부는 한국 AI 생태계의 비약적 도약을 위해 ‘국가 AI컴퓨팅센터’라는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시작했습니다. 최첨단 GPU(그래픽처리장치) 수만 장을 확보하고, 민관 합작 형태의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전국에 고성능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는 대형 계획이었죠. 하지만 5월 30일, 공모 마감일까지 응찰한 기업이 단 한 곳도 없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사실상 첫 발걸음부터 좌초된 셈입니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이 글에서는 단순한 ‘공모 유찰’이라는 겉모습이 아닌, 정부 정책의 한계와 기업의 현실적 판단, 그리고 이 사업이 가져야 할 미래 전략까지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정부의 목표: “GPU 주권, 민관 협력으로 확보하자”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 고성능 GPU의 수요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미국, 유럽, 중국은 모두 자국의 AI 역량 강화를 위해 AI 컴퓨팅 인프라 확보에 국가적 차원에서 뛰어들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또한 ‘AI G3 도약’을 내걸고, 국가 차원의 GPU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려 했습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조 5000억 원 규모의 중장기 예산을 바탕으로 AI컴퓨팅센터 구축을 위한 민관 합작 공모를 진행했으며, 1차로 약 2000억 원씩을 출자할 민간 사업자를 모집했습니다.
▍현실은 유찰…삼성SDS·네이버·KT 모두 불참
하지만 5월 30일 마감일까지 응찰한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관심을 보였던 삼성SDS, 네이버, KT 등 굵직한 기업들은 모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삼성전자는 이미 컨소시엄까지 꾸려 내부 검토를 마쳤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최종 단계에서 '보류'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복합 요인이 얽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간의 입장: “돈도 안 되고, 자율성도 없다”
수익 모델 부재
GPU를 고가에 구매해서, 국내 기업에게 저가로 대여해주는 방식은 기업 입장에서 애초에 손익이 맞지 않습니다. 정부가 51%의 공공 지분을 갖는 SPC 구조에서 수익 극대화를 꾀하기도 어렵습니다.
책임 구조의 불합리성
SPC 구조는 연대보증, 손해배상, 청산 책임 등 고위험 구조를 갖고 있어 기업 입장에선 리스크가 큽니다. 실패 시 손해는 민간이, 운영 권한은 정부가 갖는 셈이니, 그 누구도 선뜻 나서기 어려웠습니다.
비수도권 설립 강제 조항
수도권에 밀집된 AI 수요와는 달리, 센터는 비수도권에 지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수요 불확실성이 생겼습니다. 지방의 전력 인프라, 인력 수급 등의 문제도 기업들에게는 리스크였습니다.
자체 데이터센터와의 경쟁
이미 자체 AIDC(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인 기업 입장에서는 국가 센터와의 가격 경쟁에서 스스로 수익성을 낮추게 되는 구조입니다. 참여는 곧 내부 고객을 뺏기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정권 교체 변수
대통령 선거가 6월 3일로 예정돼 있어 AI 정책 기조가 바뀔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민간 기업들은 이 불확실성 속에서 ‘관망’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재공고는 6월 2일부터…그러나 회의적인 전망
과기정통부는 기존 조건을 바꾸지 않고 6월 2일부터 재공고에 들어간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업계에선 또 한 번 유찰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여전히 ‘수익성 없는 구조’와 ‘높은 공공 지분율’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는 낙찰 기준이 1곳만 신청해도 낙찰되게 바뀌었다"면서도, 삼성이나 네이버급의 거대 자본이 뛰어들 경우 다른 기업은 애초에 승산이 없다고 보고 포기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AI 인프라 확보, 방향은 맞지만 방식은 틀렸다
정부의 시도 자체는 분명 의미 있습니다. AI는 이제 국가 기술 안보의 핵심, 그리고 산업 성장의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프라를 ‘국가가 짓고 기업이 따라오게 하는’ 방식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점에서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이제는 방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SPC의 지분 구조 조정 (공공 < 민간 중심)
GPU 구매에 대한 민간 주도권 확보
중간 수익모델 및 고객사 유치 전략 제공
비수도권 조건의 유연성 확보
정부-민간 간 리스크 공유 방안 마련
이런 구조적 재설계 없이는, 아무리 좋은 목표도 현실화되기 어렵습니다.
▍AI는 국가 전략이라면, 실행도 전략적으로
이번 국가 AI컴퓨팅센터 유찰 사태는 단순한 행정 실패가 아닙니다. 정부와 산업이 어떻게 협력해야 진짜 기술 주권을 이룰 수 있는지, 근본적인 설계가 필요하다는 경고입니다.
GPU는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앞으로의 AI 시대에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움직이게 하는 핵심 에너지입니다. 이 에너지를 확보하는 방법에서, 이제는 공공주도가 아닌 민간주도+정부 지원형 모델로의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정책이 시대를 앞서가려면, 산업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는 민첩함이 필요합니다. 이번 재공고가 그런 전환의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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